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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 프랑스

프랑스 - 루아르 고성 , 여인의 성 쉬농소성

by June101 2017.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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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아르 고성

여인의 성 쉬농소성

 

 

쉬농소 성

 

셰르 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정원과 약 70헥타르의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쉬농소 성은 1515년 토마스 보이르를 위해 세워진곳이에요. 번역이 엉망이긴 하지만 이곳에도, 한국어 브로셔가 있으니 관람시 참고하시면 되구요.

 

 

 

 

 

 

아름드리 나무길을 따라 기분좋게 룰루랄라 걷다보면, 딱 봐도 여성 취향의 성이로구나 싶은, 예쁜 쉬농소 성을 만날 수가 있어요.

 

 

 

 

르네상스 양식이 돋보이는 16세기 건축물로 이 성의 주인들은 대대로 여자들이 많았기에 ‘귀부인들의 성’이라고도 불리우는곳이에요. 이 성은 샤를 8세때인 1513년 궁정 고관인 토마 보이에의 소유가 되었는데, 이때에 그는 탑과 아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을 모두 부수고 르네상스 양식의 성으로 새로이 건립했다고 해요. 프랑스 왕실로 귀속된건 1535년 프랑수아1세때였대요.

 

 

 

 

성 본관의 양쪽으로는 셰르 강이 흐르고 있구요.

 

 

 

 

셰르 강 주변에는 예쁜 정원이 펼쳐져 있어요.

 

 

 

 

성을 등지고 봤을때,

 

 

 

 

 

 

왼편은 앙리2세의 부인이었던

까트린 드 메디시스의 정원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까트린느 왕비의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화려해보이는 앙리2세의 애첩 디안 드 푸아티에의 정원이 가꾸어져있어요.

 

 

 

 

앙리2세

 

앙리 2세는 프랑수아 1세의 둘째 아들로 1547년 프랑수아 1세가 사망하자 발루아 왕조의 10번째 왕으로 즉위하게돼요. 거듭된 전쟁의 여파로 나라 살림은 궁핍해지고 돈이 필요했던 프랑수아1세는 이탈리아의 부유한 상인 메디치가의 여인인, 카트린 드 메디치를 아들 앙리2세의 부인 즉, 며느리로 맞이하게 되는데요.

 

 

 

 

카트린 드 메디치

 

카트린느는 상인의 딸답게 수학에도 능통하고 다방면으로 학식이 뛰어나긴 했으나, 엄청난 추녀였었대요. 막대한 지참금을 원한 정략 결혼이었는데다가, 못생기기까지 했으니 앙리2세가 마음을 줬을리가 만무하죠.

 

 

 

 

디안 드 푸아티에

 

앙리2세가 부인을 등한시하고, 사랑했던 디안느는 앙리2세의 아버지인 프랑수아1세의 정부였다가 후에 아들인 앙리의 애첩자리까지 꿰어차게 되는(이거슨....드라마에서나 보던 막장), 여인이에요. 더 놀라운건, 앙리2세보다 무려 20살이나 연상이었다는 사실!! (언니, 비결이 대체 뭐래요?)

 

 

 

 

 

왕위에 오른 앙리2세는,

이 아름다운 쉬농소성을

애첩인 디안느에게 선물하게 됩니다.

 

 

 

 

 

쉬농소성의 내부는, 프랑스 혁명과 세계대전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없이 비교적 그 시대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라고해요. 내부의 첫 관문인 근위병실 바닥을 보면, 많이 닳아없어지긴 했지만 16세기 마졸리카 도기의 유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것을 볼 수 있어요.

 

 

 

 

이곳은 왕의 애첩인 디안느의 방이었어요. 하지만 왕이 마상경기에 참가했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자, 왕비 카트린느는 디안느를 쫓아내어 버린 후 자신의 방으로 꾸며버렸대요.

 

 

 

 

카트린느 왕비 자신의 초상화를 걸고

 

 

 

 

난로와 바닥에는, 앙리2세와 카트린느 메디치의 이니셜인 H 와 C 이얽혀있는 무늬를 새겨넣었죠. (근데..... 이 이니셜 아무리 봐도, 디안느의 D 같다는...;;;)

 

 

 

 

방의 천장에도 앙리(Henry)를 뜻하는 H 이니셜이 새겨져있어요. 또한 원래는 이 방의 바로 윗층방이 카트린느 왕비의 방이었는데, 

 

 

 

 

카트린느의 방

 

디안느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아랫층을 몰래 엿보곤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도 있네요.

 

 

 

 

 

들어서면 가슴이 팍팍하게 막힐정도로 답답한 느낌이 들었던 시커멓게 꾸며진, 이 방은 앙리2세 아들, 앙리3세의 부인인 루이즈 드 로렌의 침실이에요.

 

 

 

 

앙리3세

 

아버지인 앙리2세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형이었던 샤를9세도 후사없이 일찍 죽자 뒤를 이어 왕이 된 앙리3세는 여성성이 매우 강한 왕이었는데,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내 후사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복잡한 정치 상황에 말려 암살을 당한 후 그를 끝으로 1328년 필리프 6세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발루아 왕조가 끝나고 부르봉 왕조가 시작되게 되구요. 암튼, 앙리 3세가 암살을 당한 뒤 그의 미망인인

 

 

 

 

루이즈 드 로렌

 

루이즈 드 로렌은 죽을때까지 하얀 상복만을 입었으며, 쉬농소 성으로 조용히 물러난후 방을 온통 까맣게 꾸며놓고 평생을 비통해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물랭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1601년 1월 그 곳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대요.

“나는 그렇게 잘 생기고 좋은 남편과 이렇게 멀리 떨어져 혼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워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었지요. 그는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한 우정을 보여 주었고, 나는 하느님께 그를 부디 내 곁에 있게 해달라고, 오직 그를 위해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지요.” 이런 처연한 고백담은 루이즈가 1585년 느무르의 공작부인인 자기 숙모에게 보낸 서신의 일부라고해요.

 

 

 

 

갤러리

 

카트린느에 의해 지어진 이 갤러리는 화려한 무도회장으로 1577년 그녀의 아들 앙리3세의 대관식 축제 기간에 맞춰 처음 무도회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해요.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야전 병원으로 쓰이기도 한 이곳에는 저렇게 한무더기 꽃이 놓여있는데요. 세가지 색깔의 꽃은 프랑스의 삼색 국기를 상징하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14-1918년이라는 연대 표시도 눈에 띄입니다.

 

 

.

찍어 온 사진은

엄청 많은데....

설명이 자꾸 길어지니

가독성도 떨어지는것 같고..

(사실 이거슨 핑계고, 제가 힘들어서)

이쯤에서 글 엉성하게 급 마무리하구요.

 

교통편이 어려워

다 돌아보긴 힘든곳이긴하지만

루아르 고성쪽으로

시간내어 방문해보시면

무너지면 무너진대로,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과

그들의 역사를 함께 얽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퍽 좋으실거라 장담 드릴게요.

 

포스팅 내용은

지식백과와 위키백과 

많이 참고했으니,

관심있으신분들은

따로 검색해보셔도 좋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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