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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 프랑스

프랑스 - 레오나르도다빈치가 말년을 보낸, 클로뤼세성

by June101 2017.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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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다빈치가 말년을 보낸

클로뤼세성

 

 

 

 

앙부아즈성의 옆으로 나 있는 가파른 길을 따라 20여분을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여생을 보낸곳으로 유명한

클로뤼세 저택에 도착하게 됩니다.

 

 

 

 

오픈시간은

11시30분부터 15시까지에요.

 

 

 

 

한국어 안내 브로셔가 비치되어 있으니

꼭 챙기세요.

 

 

 

 

1471년에 완성된 클로뤼세는 1490년 샤를 8세의 소유가 됨으로써, 이후 200여년간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대요. (후에, 프랑수아 1세는 본인이 살고 있는 앙부아즈 성과 가까운 이 곳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머물도록 했구요.)

 

 

 

 

샤를 8세는, 앞 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었는데 브레타뉴 공녀인 안느와 정략결혼을 함으로써 브레타뉴 공국을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귀속시킨 왕이에요.

 

 

 

 

클로뤼세의 0층에 위치한 이 예배당은 샤를8세가 그의 아내 안느를 위해 지은곳이에요. 안느와 샤를8세 사이에는 4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모두 어릴때 죽었다고 하죠. 이 곳 예배당에서 왕비 안느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달래었다고 합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형 천장의 정중앙 가운데에는 프랑스의 문장인 세개의 백합이 새겨져있는걸 볼 수 있어요. 그 아래 벽화들은 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그린 그림인데요. 특히,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가 그려진 '수태고지'가 눈에 띄입니다.

 

 

 

 

 

클로뤼세의 관람은 좁은 계단을 따라 갤러리를 오르는데서부터 시작돼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

 

 

 

 

접견실

 

 

 

 

평소 채식을 즐겼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주방

 

 

 

 

작업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에서 프랑스로 넘어올 당시 그가 아끼는 세개의 회화 작품도 가져왔었는데 '아이를 안은 성모' , '성자 세례자 요한'

 

 

 

 

그리고, 유명한

'모나리자' 가 바로 그것이지요.

(물론,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은 모두 모조품입니다)

 

 

 

 

클로뤼세에서 본 모습

 

저 멀리, 화살표로 표시한곳을 보시면 앙부아즈 성이 바로 지척에 있음을 알 수 있어요.

 

 

 

 

클로뤼세의 지하에는

이런 통로가 있는데,

 

비밀 지하통로는 앙부아즈성과 연결되어 있구요. 당시의 젊은 왕인 프랑수아1세는 이곳을 통해 몰래 클로뤼세를 드나들었고 그가 아버지라 부를정도로 추앙하던 다빈치와 이상세계에 대한 논의를 하며 깊은 우정을 나눴다고 해요.

 

 

 

 

 

 

지하에 위치한 4개의 홀에는 다빈치의 원본 데생을 토대로 하여, 그 시대 자제로 만든 발명품 모형이 전시되어있구요.

 

 

 

 

건물 밖으로 나오면

넓-은 다빈치 정원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새들과, 큰 플라타너스가 우거진 산책로를 걷다가 일순간 '나 길 잃어버린거 아닌가?' 당황스러움까지 느꼈었던 넓디넓은 정원-

 

 

 

 

 

 

 

 

 

 

 

정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레오나르도의 발명품들은 직접 만져보거나 작동 시켜볼 수도 있어요.

 

 

 

 

프랑수아1세의 초청으로 1516년

프랑스로 옮겨온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미 64세라는, 만만치 않은 나이에 접어든 그는 젊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등에게 밀리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던차였고 이때에 달콤한 손짓을 보내는 프랑수아1세의 유혹에 흔들릴 수 밖에 없었죠.

 

그에게 프랑스는 이리저리 부딪히기 시작한 그의 이상을 다시금 펼칠 수 있게 될 희망의 장소였을거 같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작 3년만을 보내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왕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그는, 죽을 당시 '오 국왕이여, 군주여, 신이시여' 라는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하죠. 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 프랑수아1세에 대한 감사와, 이러한 기회를 일찍 빼앗아가버린 신에 대한 원망이었을까요? 마음대로 상상을 해보며.....글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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