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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 프랑스

프랑스 - 앙부아즈 성 , 루아르 계곡 최초의 르네상스 건축물

by June101 2017.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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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아즈 성

루아르 계곡 최초의 르네상스 건축물

 

 

루아르강과 아마스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이 곳 앙브아즈 역시, 지리적 전략적인 잇점으로 인해,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하구요. 요새같은 형태를 갖춘건 (제가 해석하기로는) 기원 후 4세기 무렵, 본관을 보호하기 위해 외호가 파진 이후부터인듯합니다. 이후로도 엎치락 뒤치락하며 이 성의 주인은 여러번 바뀌었는데,

 

 

 

 

# 샤를7세

 

프랑스 왕정으로 귀속된건

샤를7세때인 1431년 이었어요.

 

(참고로, 샤를7세는 프랑스의 영웅

잔다르크를 배신한 나쁜왕임)

 

 

 

 

 

원래는 본관만 달랑 있던

요새같은 형태의 성이었던 이곳이

본격적으로 확장되고 꾸며지기 시작한건

 

 

 

 

# 샤를 8세

 

샤를 7세 이후 루이 11세를 거쳐 그 다음 왕이 된, 샤를8세때부터였던거 같아요.

 

 

 

 

# 안느 드 브레타뉴

 

브레타뉴 지방의 공녀였던 안느는,

프랑스의 침략에 살아남기위해

억지로 

샤를 8세와 결혼을 하게돼요.

이 결혼으로 인해, 브레타뉴는

프랑스 왕조에 공식적으로 소속됩니다. 

 

 

 

 

딱 봐도

천연의 요새로

높은 성곽에 둘러싸여있는

앙브아즈성

 

 

 

 

 

 

앙브아즈로 들어서는길

 

다소 구글 번역 스럽지만

한국어 안내 브로셔도 제공되니까

잘 챙겨보시구요.

 

 

 

 

왕실 본궁의 입구

 

근위병실에 전시된 16세기의 갑옷과 투구입니다. 당시 왕의 근위대는 스코틀랜드, 스위스 친위대 그리고 나중에는 프랑스 기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대요.

 

 

 

 

원래 앙브아즈성의 크기에요.

지금은 검은색으로 표시된 부분만 남아 있어요.

 

 

 

 

  위에서 언급한 샤를8세와 브레타뉴 공녀인 안느의 초상화입니다.

 

 

 

 

어전회의실의 기둥을 보면,

 

 

 

 

프랑스 왕가의 상징인 백합꽃과

 

 

 

 

브레타뉴 공국의 상징인 흰담비 얼룩 무늬 장식으로 번갈아 꾸며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침략에 굴복한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샤를8세와 안느의 결혼으로 두 왕국이 동등히 합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거죠.

 

 

 

 

 

바닥과 의자에도

프랑스 왕가의 상징이 종쫑쫑 박혀있네요.

 

 

 

 

벽에는, 큰 귀가 달린

사람 형상이 사방 모서리에 새겨져있는데

이는 벽에도 귀가 있으니

말조심해라. 뭐 그런뜻이래요.

 

 

 

 

 

 

 

무튼,

왕가의 방으로 꾸며진

이곳들을 구경하며 쫄랑쫄랑 나옵니다.

브로셔에 있는 설명을 모두 적어올리다가,

큰 의미가 없는거 같아서

다시 삭제해버렸어요.

 

 

 

 

기마병 탑 경사길

 

이 나선식의 경사길은 시내에서부터 말과 마차들이 성의 테라스까지 가기 쉽도록 설계된것이구요.

 

 

 

 

이 경사길을 따라 나오면 오말 갤러리를 거쳐 정원으로 나올 수 있어요. 건물의 강쪽으로 나와있는 동그란 모양의 테라스 탑은 미님 탑이라고 불러요. 

 

 

 

 

이곳에서 바라보면,

루아르강의 전경을 잘 감상 할 수 있어요.

 

 

 

 

 앙브아즈 정원의 모습

 

 

 

이 곳 앙브아즈성은

두가지 건축양식이 섞여있는데

이는,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원정을 떠나기

전과 후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원정을 떠나기 이전에는

원래 유행하던

고딕양식으로 확장을 시작했지만

예술과 건축이 발달한 이탈리아에서

그곳의 르네상스 양식에

홀딱 빠진 샤를8세 이후의 왕들에 의해

이른바

프랑스식 르네상스의 시대가 열리게 된거였죠. 

 

 

 

 

 

생 위베르 성당

 

앙브아즈성 초입에 있는 이 성당은 사냥의 수호 성인인 성 위베르를 기리기 위해 1493년 지어졌어요. 샤를8세가 이태리 원정을 떠나기 이전에 지어졌기때문에 뾰족뾰족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져있는걸 볼 수 있어요.

 

 

 

 

 

 

이 성당이 특히 유명한 이유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묘가 있기때문이에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정원의 다른편에 있던 성-플로랑땡 성직자 성당에 묻혀졌었는데 11세기에 들어 이 성당이 철거되면서 그의 무덤도 소실되었구요. 후에 잔골들을 발굴해, 지금의 생위베르 성당으로 옮기게 된거라고 합니다. 원래 묘가 있던 곳인 성-플로랑땡 성당 자리에는 그의 흉상이 대신하고 있어요.

 

 

 

 

 # 프랑수아 1세

 

이탈리아 사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프랑스로 데려온 사람은

엄청난 이탈리아빠였던

프랑수아1세였습니다.

 

프랑수아 1세는,

앙브아즈성 근처의 끌로뤼세라는 저택을

다빈치에게 내어주고

그들만의 이상세계를 의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끌로뤼세 저택에 대한 글은

다음 포스팅에서 이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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