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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 터키

이스탄불. 덮어버릴지언정 무너트리진 못한 기독교 최고의 성전 아야소피아

by June101 2015.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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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잡고 포스팅에 임하는, 아야소피아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좀 긴 글이 될듯 하지만, 엄청나게 긴 시간을 들여 작성하는 글이니만큼 기분좋게 읽으시는분들이 많으셨으면 합니다. 지금의 이스탄불 지역에 있는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원래는 성당이었어요. 아야소피아 성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60톤의 황금을 써서 만든 솔로몬왕의 성전이 최고로 꼽혔었으나 60톤 황금의 10배에 달하는 600톤의 황금을 써서 만든 아야 소피아 성당이 완성됨으로써 솔로몬 성전은 최고의 자리에서 bye bye. 아야소피아 성당의 헌당식에 참석한 황제는 '내가 솔로몬을 이겼도다' 라는 말로 그 감격을 표현하였다고 하죠. 이후 지금의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전까지인 1000여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야소피아 성당은 기독교 최고의 성전으로 그 위세를 떨쳤다고 합니다.  

 

 

아야 소피아는 터키 제국이 들어서면서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구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특징이 골고루 응집된 특색있는 역사적인 장소로 의미가 깊은 곳이기도하지요. 역덕은 아니라 저도 깊은 내용까지 파고들어 설명하긴 어려움이 있지만 배경에 대한 썰을 조금 풀어보자면 로마의 카톨릭이 성상숭배의 이유로 종교분리를 격게 되면서 교황이 지배하게 된 기존 카톨릭의 서로마에서 황제 지배하의 그리스 정교인 동로마가  분리되었구요. 지금의 이스탄불은 투르크족이 쳐들어오기 전까지 그리스정교도인 동로마 비잔티움제국의 수도였던 곳이었어요.

 

 

 

 

이 아야소피아 성당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나무로 만든 2층높이의 성당이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된후 역시 나무로 만든 4층 높이의 성당을 재건하게 되었구요. 이 4층 높이의 성당은 당시 황제의 폭정에 반기를 든 시민들의 반란으로 다시 파괴되게 됩니다. 시민들의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분노한 황제는 모든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아 무참한 살상으로 응징을 가했다고 해요. 이 응징으로 고작 6만의 시민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구요. 황제는 남은 6만명의 시민들에게 니들이 파괴한 성당을 다시 지어올리라 명하게 됩니다. 이미 많은 수의 시민들이 황제의 응징으로 죽음을 당한 뒤라 변변한 건축 전문가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아야소피아 성당의 설계도를 그리게 되는데요. 당시 최고 높이였던 6층 높이의 설계도를 그렸으나 이는 분노에 가득찬 황제의 성에 차지 않았고 다시 15층 높이의 설계도로 그려지게 됩니다.

 

 

 

 

돔을 기둥이 아닌 세미돔과 세미돔이 받치고 있는 형태로 지은점도 대단하지만 지진 지역대에 들어가는 이스탄불에서는 현대에도 7층 높이 이상의 건물은 짓지 않는것을 감안해 보건대 무려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전에 15층 높이로 지어진 이 아야소피아 성당은 정말 대단한 건축 혁명이 아닐 수 없는곳입니다. 이후 70여년에 걸친 십자군 원정대의 성전파괴 사건을 겪은후 돌궐(투르크) 족의 침입을 맞게 되고 돌궐족 즉, 이슬람을 믿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권에 들게 되면서 술탄 메흐메트2세에 의해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게 된 아야소피아 성당은 내부의 모자이크는 모두 회벽으로 덮혀버렸으며 이슬람 사원(자미)의 상징인 첨탑(미나레)가 더해진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아야 소피아는 티켓과 간단한 짐검사후 입장하게 되구요. 될수록 아침 일찍 가시는게 좋아요. 늦게 가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관람에 불편을 겪을수도 있어요.

 

 

 


 성당 입구앞에 있는 작은 이 터는 앞서 설명한 시민들의 반란으로 소실된 성당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자리라고 해요.

 

 

 


성당 입구를 들어서면 본당으로 들어가기전 외랑과 내랑을 거치게 되는데요(복도처럼 생긴곳) 사진은 외랑의 모습입니다. 외랑의 벽은 화재로 인해 불타는 일이 없도록 그리스에서 가져온 화산재를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울퉁불퉁한 벽면이 눈에 띄이실거에요.

 

 

 


이렇게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진 벽면중 1번이라고 표시한 부분은 소금의 양을 많이 넣고, 2번이라고 표시한 부분은 소금의 양을 적게 넣어 재료를 배합한것으로 이는 삼투압 현상을 이용해 화산재의 응집력을 높여 더 견고하게 만든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외랑을 거쳐 들어서게 되는 내랑의 모습입니다. 내랑의 벽면에 있는 돌들은 가볍게 잘 붙이기 위해 1cm 이내로 얇게 얇게 깍았다고 해요. 지금의 기술로는 별 어려운게 아니지만, 모두 1500년 이전에 만들었던 것들이니 실로 대단한 일이었던거구요. 천장은 전부 황금 모자이크로 처리되어 있는 모습이에요. 참고로 외랑에도 황금 모자이크가 있었지만, 이는 앞서 잠시 언급한 십자군 원정대가 쳐들어왔을당시 모두 약탈당했다고 합니다.

 

 

 


내랑을 거쳐, 성당의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만나게 되는데요. 사진속 커다란 문은 황제가 통과하는 전용문이었구요. 문은 전부 9개가 있으며,가운데 제일 큰 문은 황제 전용문이고 제일 끝쪽의 문은 노예들이 입장하는 문이었다고 합니다.

 

 

 


황제의 문은 황제가 드나들었던 문이었으니만큼 문의 양옆에 보초병이 서있었을텐데요. 보초병이 서있었던 자리는 이렇게 바닥이 움푹 파여있어요.

 

 

 

 

본당 북서쪽 입구 안쪽에 있는 일명 '소망의 기둥'은 아야소피아 성당에서 제일 인기있는 장소인데요. 이 기둥 속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천사가 살고 있다고 해요. 그런고로 기둥에 나 있는 구멍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360도로 돌리면 천사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하구요. 저마다의 소원을 빌기위해 항상 사람들의 긴줄이 늘어서있어요. 기둥은 항상 촉촉히 젖어있는데 이는 천사의 눈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둥의 결로현상에 의한 이슬이라고 해요.

 

 

 


드디어 본당으로 들어섭니다. 천장의 제일 윗부분 돔까지는 무려 15층 높이에 달하구요. 이 돔을 기둥으로 받치고 있는게 아니라 세미돔을 두어 중력을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글로는, 혹은 말로는 쉽게 하고 있지만 정말 대단한 기술인거에요. 생각해보세요. 당시에는 무게 중심을 제대로 계산할 수 있는 어떠한 도구나 기술도 없었고, 더구나 혁명의 여파로 황제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시민들중 다수의 전문가들도 함께 죽음을 맞았던지라 비건축 전문가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더듬어 모든 수를 계산해내어 지은 건물이며 일체 중앙돔을 받칠 수 있는 어떠한 기둥도 두지 않았다는것을요.

 

 

 


돔 바로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가운데가 제일 높은 돔이구요. 화살표로 표시한곳이 중앙 돔의 중력을 분산하여 받치고 있는 세미돔이에요. 세미돔은 이슬람에 의해 덮힌 회벽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원래는 중앙돔처럼 황금 모자이크로 덮혀있었다고해요.

 

 

 


이슬람과 공존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보이는데요. 이렇게 돔 바로 아래 성모 마리아의 그림 양쪽으로 걸린 동그란 현판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어요. 현판의 아래로 쭈욱 시선을 내려 보면 비스듬한 방향으로 자리한 문이 보이실거에요. 이 문은, 이슬람인들이 기도하는 메카의 방향으로 난 문이에요.

 

 

 


 천사 미카엘의 모습이구요.

 

 

 


 훼손되었지만 천사 가브리엘로

추정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사진속 천사의 모습을 보시면, 화살표 방향으로 동그란 구슬을 들고 있는게 보이실거에요. 이 구슬은 지구를 표현한것으로 지구는 둥글다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요. 성당이 지어졌을 당시는 갈릴레오가 있기 이전의 일이었기에 이미 지구가 둥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놀라움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는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석하고 싶네요.

 

 

 


중앙돔 아랫쪽으로 쭈욱 시선을 내리꽂아 바닥을 보시면 이런 십자가 표시를 찾아볼수 있어요. 이 표시는 돔 아래의 정가운데인 무게중심을 표시한것이에요. 그 옛날 사람이 건물을 지으면서 한땀한땀 더듬어 정가운데를 표시한것이죠. 생각해보면 대단한일이기도 하지만 황제의 폭정에 온 가족이 노예처럼 동원되어 밤낮없이 일하던 모습이 떠올라 슬퍼지기도 하네요. 더 놀라운 일은 지금은 여기가 정가운데는 아니라고 해요. 처음 성당을 지을 당시에는 정가운데가 맞았었지만 지난 1999년에 있었던 터키 대지진으로 건물 전체가 비틀려 옆으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중앙이 비틀려버렸는데도, 기둥하나 없는 이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다는건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은 위 십자가 표식에서 15cm 옆으로 이동한곳이 정가운데가 되었다고 하구요. 15cm 옆쪽에 핸드폰 카메라를 놓고 천장의 모습을 역으로 비춰보면 돔의 정중앙이 보이는걸 확인해보실 수 있어요. 중심이 15cm 나 이동할 정도로 심하게 비틀렸는데 15층 높이의 돔이 무너지지 않고 아직도 너끈히 버티고 있다는 점을 두고 사람들은 천사 가브리엘이 하늘에서 돔을 붙잡고 있기때문이라 얘기한다고 하는데, 뭐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어쨌거나 대단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네요.

 

 

 


 돔 자체는 기둥이 받치고 있지 않지만 돔 옆쪽의 건물은 역시 기둥을 쓰지 않을 수 없죠. 사진속에 벽처럼 보이는것은 벽이 아니라 기둥이에요.

 

 

 


이 기둥들은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가져온 기둥으로 모두 366개이며 각각의 무개는 무려 68톤에 달한다고 해요. 68톤에 달하는 기둥을 어떻게 직접 이스탄불까지 나를 수 있었을까요. 당시의 사람들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무거운 기둥을 이동시켰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구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니'에 의해 옮겨졌다고 하는데요 (-_-)

 

 

 


지니는 생각만으로도 무거운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요정으로, 화살로 표시한 부분은 지니의 손자국이라고 합니다. 대단한 건축물이 지어진 과정에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니 이 이야기도 그중의 하나려니 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이면 될듯 해요.

 

 

 


성당의 제일 가장 자리쪽에는 물고기와 삼지창 모양의 무늬가 세겨진 기둥이 있는데, 이곳은 노예들이 기도하는 공간이었다고 해요. 포스팅의 앞쪽에서 성당의 본당으로 들어서기 위해선 9개의 문이 있고 제일 끝쪽 문이 노예 전용 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노예 전용문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위치의 기둥이구요. 물고기와 삼지창 모양은 포세이돈 신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당시는 기독교가 국교였지만 포세이돈 신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사종교를 믿고 있는 노예들의 신이었다고 해요. 아무튼 성당을 짓느라 매일같이 막중한 노동에 시달렸던 노예들이 깨알같이 그들의 신까지 집어넣어놓은 점도 재미있는 이야기중 하나입니다.

 

 

 


1층 본당을 나와 여자들의 공간이었다는 2층으로 향합니다. 2층으로 향하는 길은 계단이 아닌 가파른 비탈길로 만들어져있어요. 이는 왕비를 비롯한 귀족 여인들이 귀하디 귀하신 그들의 발로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할 수 없었기에 마차를 타고 올라가느라 고안된 길로 이 길의 길이는 6.5층 높이에 달한다고 합니다.

 

 

 


2층 벽에는 원래 황금으로 만든 십자가가 박혀있었지만 오스만이 지배하기전 잠시 이땅을 침략했었던 십자군 원정대의 약탈로 뜯겨나갔다고 해요.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네요.

 

 

 

 

아야소피아 성당 건축의 특징적인 점 중 한가지는 건물의 모든창과 모든 기둥의 숫자가 6의 배수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이에요. 사진속에서도 보시면 6개의 창이 나 있는걸 보실 수 있구요.  사진에는 없지만 기둥의 숫자도 세어보시면 각 면마다 6배수로 만들어져있다는걸 찾아보실 수 있을거에요.

 

 

 


 '데이시스'

 

2층으로 올라가면 첫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데이시스' 모자이크입니다. 데이시스는 간청, 탄원이라는 뜻이구요. 최후의 심판날을 표현한 모자이크라 인물들의 표정이 모두 어둡습니다. 가운데는 예수님이며 예수님의 오른편은 성모마리아, 왼편은 세레자요한의 모습이에요. 많이 훼손된 모습이 안타깝네요. 

 

 

 


 원래 데이시스 모자이크의 모습이 어땠는지 보여주는 작은 그림이 왼쪽 아래 걸려있어서 참고하며 감상해보실수 있어요.

 

 

 


이 '데이시스(간청, 탄원)' 모자이크의 감상포인트는, 예수님 시선의 방향이에요. 맞은편에서 바라보든 오른편에서 바라보든 혹은 왼편에서 바라보든 예수님의 시선이 항상 나에게로 향해있는걸 확인해볼 수 있는데요. 위 사진도 각도를 달리해서 찍어본건데 어떤가요?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는 예수님의 시선이 느껴지시는지...... 모자이크에서 심판을 기다리는 세레자요한과 마리아의 모습처럼 나에게도 역시 엄중히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심판을 내릴거 같은 느낌이 들어 절로 고개가 숙여졌어요. 참고로, 어느방향에서나 나를 보고있는듯한 느낌으로 그린 이 그림의 기법은 일명 모나리자의 레오나르도다빈치 기법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이 모자이크는 레오나르도다빈치가 있기 1000년전에 그려진것이라고 해요.

 

 

 


 2층 천장의 모습입니다. 원래 있던 아야소피아의 천장 모자이크와 이슬람인들이 덧칠한 회벽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모습인데요.

 

 

 


뜯다 만 모습으로, 회벽속에 숨겨져있는 천장화의 일부 모습만 군데군데 보이고 있습니다. 회벽속에 숨겨진 이 모자이크는 로마 바티칸 대성당의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보다 1000년이 앞서 제작된것이라고 해요. 아야소피아 건물을 지어낸 기술로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분명 이 천장화의 모습 역시 엄청 대단했었을거 같아요. 이슬람인들의 회벽칠로 인해 소실되었다는게 정말 안타깝고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이시스' 벽화의 맞은편에 따로 보호되고 있는 이것은 오스만 제국의 투르크족이 침략해오기 이전 침투해 점령 했었던 십자군 원정대 장군인 엔리코 단돌로의 무덤이에요. 4차 십자군 원정때 이스탄불로 입성한 십자군 원정대는 당시 많은 약탈을 자행하며 아야소피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역사는 이러한 십자군의 만행을 '인류학적·문화사적으로 콘스탄티노플 최대의 비극'이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심했다고 합니다.  이 엔리코의 무덤은 당시 역사적 흔적으로 남아 아야소피아와 함께 하고 있네요.

 

 

 


 제일 많은 카메라 프레시를 받고 있는 이 모자이크는 최고의 권력자인 황제를 비하하는 뜻이 숨겨진 풍자 그림인데요.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근엄하게 앉아있고 그 양옆으로는 황제와 왕비가 아부를 하듯이 뭔가를 바치고 있는 모습이구요. 왕비의 옆에는 이미 죽어서 세상에 없는 왕자까지(그것도 구석 꺽여져 그늘져있는 부분에) 그려넣어 조롱을 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즉, 황제 니가 아무리 잘나봐야 예수님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다 라는걸 표현해놓은 벽화이구요.

 

 

 

 

 

비슷하지만 성인의 모습으로 자리한 예수님이 가운데 앉아있는 벽화입니다. 벽화속의 여황제 조에Zoe 는 3번의 결혼을 하였는데 남편이 바뀔때마다 벽화의 그림을 수정했다고 해요. 웃긴건, 얼굴 부분만 수정했었기때문에 벽화속 왕비의 남편 모습은 몸은 첫번째 남편의 몸이며 얼굴은 두번째 남편의 얼굴이었다가 세번째 남편의 얼굴로 최종 자리잡은 모습이라고 하구요. 세번이나 결혼한 왕비의 얼굴도 원래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옆면얼굴로 수정되어 그려졌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시면, 전체적으로 기둥이 기울어져있고, 바닥도 내려앉아있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1999년 있었던 터키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휘고 기운 흔적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게 버티고 있는 아야소피아의 모습입니다.

 

 

 


관람을 다 마치고 나오는 길에 출구쪽 통로의 머리위쪽에서 만나볼 수 있는 벽화입니다.  혹시 못 보고 지나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벽화의 맞은편쪽에는 거울까지 설치되어 반사된 그림이 눈에 띌수 있게 배려되어 있구요.

 

 

 

 

 

이처럼 반사거울까지 설치해 꼭 보고 가라는 배려를 해놓은 이 그림은 가운데는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이며 마리아의 왼편은 콘스탄티노플을 봉헌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오른편은 완성된 아야소피아성당을 봉헌하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습을 표현해놓은것이라고 합니다.

 

 

 

 

아야소피아 성당은 나자르투어를 따로 신청해서 돌아보았었구요. 이런 박물관들은 혼자서 쓱 돌아보는것보다는 얽혀있는 설명을 함께 곁들어 듣는게 훨 좋기때문에 현지 투어에 대해서는 정말 강추하는바입니다. 하지만, 터키의 이슬람교도들은 타종교를 존중하기때문에 아야소피아 성당을 부수지 않고 보존한것이다. 오히려 아야소피아 성당을 통탄할정도로 훼손한것은 터키인들 이전에 침략한 십자군 원정대의 약탈때문이었다. 라는말을 내내 강조하던것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일단, 지진 우려때문에 현대에도 짓지 않는 높이의 이 대단한 건물을 부수지 않은것과 차마 아까워서 부술수 없었던건 엄밀히 구분해야 하는거구요. 유럽의 여러나라를 돌다보면, 꼭 빠트리지 않고 보게 되는 관광자원이 바로 '성당' 이에요. 유럽인들에게 종교란 모든 삶의 의미 그 자체였고, '신을 모시는곳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온갖 화려함과 최고의 기술력이 집중된곳이 바로 '성당' 이죠. 지금의 이탈리아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이 있기전 1000여년동안이나 최고의 기독교 성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는 '아야소피아 성당'! 당시에는 대체 얼마나 화려하고 대단했었을까요. 그런 건물의 벽을 회칠을 해서 덕지덕지 다 발라버리고, 이슬람 명패로 가려버린 아야소피아. 말이 좋아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을 볼 수 있다는거지. 이슬람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그나마 건물이라도 온전하니 이렇게라도 그 당시의 대단함을 옅볼 수 있는게 아닌가 싶었어요. 훼손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슬람인들의 입장에서 행한 '훼손'을 뭐라 하는건 아니구요. 단지 좋-게 굳이 '포장'까지 하지는 않았으면 싶었어요. 그냥...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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