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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 프랑스

프랑스 - 노르망디 천공의 성, 몽 생 미셸

by June101 2017.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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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 생 미셸

Mont Saint Michel

 

몽 생 미셸은 708년경 꿈에서 대천사 미카엘의 계시를 받게 된 아브랑슈의 주교에 의해 지어지게 된 곳이에요. 처음에는 동굴 형식의 작은 예배당으로 다소 초라한 모습이었으나 이후 무려 1300여년의 세월동안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하게 되었어요.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경이로움 마저 느껴지게 하는 몽생미셸은 수도원이라기보다는 요새에 가까운 모습인데요. 여기에는 100년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빠트릴수 없어요.

 

 

 

 

1328년 프랑스의 샤를 4세가 후사없이 죽자 사촌인 필리프 6세가 뒤를 잇게 되었는데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샤를4세의 조카인 자기가 프랑스 왕이 되어야 한다며 반발을 하였고 안그래도 영토 다툼으로 감정의 골이 깊었던 양국간의 사이는 급속도로 나빠지게 됩니다.

 

 

 

 

마침내는 필라프 6세가 프랑스 지역에 있는 영국의 땅인 플랑드르 라는곳을 뺏어버리면서 영국을 자극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에 발끈한 영국이 프랑스로 쳐들어오며 발발하게 된 것이 바로 1337-1453년동안 일어난 100년 전쟁의 시작이었어요. (물론, 이 모든 116년동안 쭉 전쟁을 했었던건 아니구요. 중간에 흑사병과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휴전했던 기간도 있었어요.)

 

 

 

 

이미 영국의 손아귀에 있는 브르타뉴와 노르망디의 경계 지점에 끼어있던 몽생미셸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영국의 침략을 버텨내야 했었는데요. 몽생미셸은 바위산 위에 세워진 잇점을 활용해 주변을 단단한 성벽으로 두르고 요새화 시키며 수비대장직에 있었던 게클랑 장군을 필두로 단 한차례도 적군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았었다고 해요.

 

 

 

 

100년 전쟁은 모두 프랑스 땅에서만 이루어졌으며 이에 의해 프랑스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마침내는 프랑스의 패색이 짙어지게 되었다고 하죠. 이때에 혜성처럼 나타나 영국을 무찔러버린 프랑스의 영웅 잔다르크! 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아시죠?

 

 

 

 

유럽에서도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15m 를 자랑하는 몽생 미셸은 이로 인해 해와 달의 움직임에 따라 하루 두 차례 섬이 되기도 하고 산이 되기도 하는곳이에요.

 

 

 

 

 

19세기 말에는 몽생미셸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제방길이 만들어졌으나 인공적으로 만든 길 때문에 뻘이 점점 높아지게 되면서 몽생미셸이 더 이상 섬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없을거라는 연구결과에 의해 제방길은 없어지고 2015년 이후부터는 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교각이 있는 (위 사진속의) 다리가 만들어졌어요.

 

 

 

 

Navett 무료 셔틀

 

주차장에서 몽생미셸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용하는 무료 셔틀 버스에요. 아침 8시부터 밤 12시30분까지 운행하며 운행 간격은 유동적이지만 매우 잦아요. 실제로 셔틀을 타면 약2분이면 도착하므로 걸어다녀도 별 무리가 없는 매우 가까운 거리구요. 주차장쪽에는 호텔도 다수 있기때문에 비싸고 낡은 몽생미셸 내부의 호텔보다는 주차장쪽의 호텔에 묵는게 좋아요.

 

 

 

 

하루 두 차례 바다가 되었다가 섬이 되었다가 하는 몽 생 미셸 주변의 갯뻘은 조수간만의 차가 15미터나 되며 갯뻘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있어서 자칫 모르고 갯벌에 들어갔다가는 유수에 몸이 빠져 매우 위험해질 수가 있어요. 그런고로 몽생미셸에 상주하는 갯벌 길잡이 가이드의 안내에 의해서만 들어가야됨을 유의하셔야 하구요.

 

 

 

 

윗쪽 화살표 부분은 수도원이고 아랫쪽 화살표 부분은 마을이에요. 마을을 들어가는건 무료지만, 수도원은 성인 기준으로 9.5유로의 입장료가 있습니다. 현재 이곳의 마을 주민은 총 28명이래요. 그 중에서도 12명은 수도사와 수녀이고, 생피에르 성당의 3명의 사제를 빼면 실제 주민의 숫자는 13명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네요.

 

 

 

 

 

성벽으로 둘러진 입구를 통해 마을로 들어가봅니다.

 

 

 

 

 

 

 

들어서면 총 든 군인도 있고 그 옛날 100년 전쟁 당시 쓰였을듯한 대포도 전시되어 있어요.

 

 

 

 

호텔이라고 써있는 저 곳 자리가 옛날에는 학교였었던거 같아요.(이 주변이긴 한데 확실치는 않음) 지금은 주민이라고 해봐야 몽생미셸 관리원격인 성인 13명 정도가 전부이지만 9세기 후반에는 1800명에 달했던적도 있었고 20세기 초반에만 해도 250여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기에 이렇게 학교도 있었고

 

 

 

 

그리고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우체국도 있어요. 이 곳 우체국에서 간단한 엽서를 쓴 뒤 직원을 통해 부치면 몽생 미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스템프도 찍어줘요. 여기서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편지로 적어 자신에게 보내면, 여행에서 집에 돌아갈때즈음 받아 볼 수 있을거에요(저 역시 그리했구요).

 

 

 

 

 

LA Mere Poularo

 

초입에 있던 LA Mere Poularo 는 몽생미셸 맛집을 검색하면 항상 상위에 나오는곳이에요. 오믈렛이 유명한곳인데요. 몽생미셸을 복원할 당시 풀라르라는 아주머니가 일꾼들을 위해 투박한 오믈렛을 만들어 제공하던데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몽생미셸의 명물이 된 곳이지요. 하지만... 명물이라는 오믈렛의 맛은 !@#$%%^&&* 이니, 될수록 가지마세요. 여행을 다녀온 뒤에 알았지만 이 곳 지점이 저의 집 근처인 고속터미널 내 파미에스테이션에도 있었더라구요. 미리 알았다면 한번은 가봤을텐데.. (지금은 망함).

 

 

 

 

 

 

 

 

 

 

이색 간판이 눈에 띄이는 마을의 좁은 메인 도로를 따라 옛날의 그것과 같은 모습이었을듯한 상점 및 레스토랑들을 구경하며 오르다보면

 

 

 

 

 

 

 

Eglise Paroissiale Saint-Pierre

 

길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성 베드로 성당- 성당의 입구에는 프랑스의 국민영웅인 잔다르크의 동상도 세워져있네요.

 

 

 

 

저수조

 

수도원 내부에서 쓸 생활 용수를 감당하기 위한 저수조의 수도꼭지에요. 사진에는 없지만 수도꼭지에는 몽 생 미셸의 문장인 프랑스 왕가를 상징하는 백합 문양 세개와 순례자를 상징하는 가리비 조개가 새겨져있어요.

 

 

 

 

나무통로

 

사진속의 나무통로는 수도원장의 집무실에서 본당으로 바로 통하게 되어 있는 길이에요. 원래 이 통로는 앞전 사진속 저수조의 맞은편쪽에 있었으나 15세기때 백년전쟁 기간동안 본당의 성가대석이 무너저내리면서 같이 붕괴되어버렸다고 하구요, 나중에 본당 복원 공사때 새로이 만들어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거라고 합니다. 저수도 맞은편쪽으로 올려다보시면 벽에 직사각형의 붕괴된 흔적이 남아 있는걸 볼 수 있어요.

 

 

 

 

티파늄

 

수도원 들어서기전 문위의 팀파늄 자리에는 있어야 할 조각이 떨어지고 그 흔적만 남아 있는걸 볼 수 있는데요. 원래 이곳에 있었던 미카엘 대천사의 부조는 심하게 훼손되어

 

 

 

 

지금은 수도원 내의 대식당에서 손님의 방으로 통하는 계단쪽에 걸려있어요. 위 사진속 부조가 바로 그것인데, 부조의 내용은 오베르 주교의 이마에 강한 빛으로 구멍을 내며 몽통브 정상위에 성소를 지으라 명하고 있는 미카엘 대천사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것이에요.

 

 

 

 

서쪽 테라스

 

테라스가 섬위의 수도원 치고는 필요 이상으로 넓어보인다는 생각이 드실텐데, 사실 처음에는 이 곳 테라스까지 예배당이었으나 18세기에 벼락으로 인해 무너지고, 소실된 부분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무너진 부분의 석재를 재활용해 다시 깍고 다듬어 쓸 수 있는것만을 고르다 보니 예배당은 이전보다 작게 복원되었고 테라스 공간이 넓어진거라고 해요.

 

 

 

 

 

테라스로 나와 바라보이는 서쪽 방향은 브레타뉴 지방이에요. 19세기 이전, 몽생미셸로 이어지는 길이 만들어지지 않았을때의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위태위태 갯뻘을 밟으며 걸어들어온 방향인데요. 과학이 발달하기전이었기에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이곳의 만조 시간을 미리 알 수 없어, 순전히 운에 맡기며 움직일 수 밖에 없었고 무사히 수도원에 도착한 사람들은 신의 뜻이라 여기며 밀려들어오는 바닷물로 인한 기적을 체험하곤 했었던곳이죠.

 

 

 

 

 

몽생미셀의 첨탑 위의 미카엘 천사상은 1897년에 엠마뉴엘 프레미에가 만든 세명의 백년전쟁의 영웅들중 한 작품이래요. (참고로 백년 전쟁의 영웅이라고 불리우는 세명은 미카엘 대천사, 잔다르크, 디낭출신의 베르트랑 뒤 게클랑이구요. 루브르 박물관 앞 황금색 잔다르크상과 디낭에 이씨는 베르트랑 뒤 게클랑상이 나머지 둘입니다.)

 

 

 

 

 

 

 

 

 

 

 

본당

 

본당은 십자가 형태로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었으나 백년 전쟁 기간동안 제단과 성가대석 전체가 무너져 15세기에 보수공사를 하게 되었고 이때에 성가대석과 채플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지게 되었어요. 즉, 이곳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어우러져있는곳이에요. 지금도 실제로 미사가 진행되고 있기때문에 하루 세차례, 오전7시-오후12시-저녁6시에 오시면 미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클로이스터

 

옥상에 있는 정원이에요. 사방은 막혀있고 화당의 위쪽, 즉 하늘로만 열려있는 이 클로이스터는 수도사들의 명상공간이자 천국을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총 137개의 기둥은 1은 유일신인 하느님, 3은 삼위일체, 7은 완전한 숫자를 의미하고 있다고 합니다. 

 

 

 

 

벽에 1818 이라고 써있길래 중요한 뭔가가 있는 연대표시인가 싶어서 일단 찍어오긴 했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의미는 모르겠네요. 아시는분 있으면 쪽지좀.....

 

 

 

 

백년 전쟁을 겪은 몽 생 미셸은 또 한번 세월의 풍파를 맞게 되는데요. 바로 1789년-1794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이 그것입니다. 마리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바로 그 사건! 왕실과 귀족 그리고 성직자들의 방탕함과 부폐함에 들고 일어난 민중들은 몽생 미셸내의 프레스코화등 모든 화려한 장식물들을 소실 시키고 파괴된 바스티유 감옥대신 이곳을 죄수들의 감옥으로 대체해버렸다고해요.

 

 

 

 

 

거중기

 

수도사들만이 생활할때는 일반적인 길로 물자를 수송해도 충분했으나 감옥으로 쓰인 이후부터는 1400명의 죄수를 수용하기도 했었던 이곳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거중기를 설치했고 6명의 죄수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려서 한번에 약 2톤의 물자를 끌어 올릴 수 있도록 했대요.

 

 

 

 

 

 

번성했던 한때도 있었으나 1791년 혁명군에 의해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1863년 마침내는쇄되기에 이르렀던 몽생미셸- 한동안 철저하게 버림받았던곳이지만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몽생미셸의 복원을 위한 운동을 하게되며 1874년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수도원으로서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공사가 시작되었구요. 1979년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수도원)과 자연유산(갯벌)에 당당히 등재되게 됩니다.

 

 

이만, 마무리하며....

몽생미셸!!

꼭 가보세요.

들인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곳이라 장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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